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처음 입문할 때 봐야 할 작품은

프랑스누벨바그

🎬 퇴직하고 처음 제대로 마주한 영화들, 누벨바그 이야기

퇴직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30년 넘게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지하철을 탔던 사람이 갑자기 하루 종일 자기 시간을 쓰게 되니까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찾게 된 게 영화였습니다. 젊을 때 보고 싶었지만 바빠서 못 봤던 영화들이 머릿속에 수십 편은 쌓여 있었으니까요.

그중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간 게 프랑스 누벨바그였습니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영화 좀 안다”는 사람이면 꼭 한 번쯤은 언급하는 이름들이잖아요. 트뤼포, 고다르. 근데 막상 처음 틀었을 때 당황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화면은 흔들리고,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대사는 뜬금없이 철학적인 말을 던지고. 중간에 꺼버린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저처럼 뒤늦게 누벨바그에 입문하려다가 첫 작품을 잘못 골라서 “이건 나랑 안 맞는 장르구나”하고 포기해버리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30년 직장생활 하면서 보고서 쓰는 거라면 자신 있었는데, 영화 추천 글은 처음이라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냥 옆 동네 사는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써볼 생각입니다.


🎥 누벨바그가 뭔지, 먼저 조금만 알고 들어가면 좋습니다

누벨바그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원래 잡지 비평을 쓰던 젊은 영화광들이 카메라를 직접 들고 거리로 나가면서 시작된 움직임입니다. 스튜디오 촬영, 세트, 조명 장비, 이런 것들 없이 그냥 파리 거리에서 찍은 거죠. 그러니까 화면이 흔들리고 자연광이 들어오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그게 이 영화들의 의도된 스타일이었던 겁니다.

이걸 미리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몰랐으니까 처음에 “화질이 왜 이래?” 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습니다. 어쨌든 핵심은 이겁니다. 누벨바그는 완성된 이야기를 예쁘게 포장해서 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주인공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결말도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됩니다. 그게 불친절한 게 아니라 관객한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거라고 이제는 이해합니다. 물론 처음엔 몰랐지만요.


🌟 입문작으로 가장 먼저 봐야 할 작품들

📽️ 첫 번째,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누벨바그 입문을 얘기할 때 이 영화를 빠뜨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도 여러 경로에서 추천을 받아서 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학교에서 말썽 피우고, 집에서 방치당하고, 결국 소년원까지 가는 이야기거든요. 근데 끝 장면에서 뭔가 가슴을 탁 치는 게 있었습니다.

주인공 앙투안이 바닷가로 달려가서 멈추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카메라가 그 아이 얼굴을 정면으로 잡는 순간. 정확하진 않지만, 그게 영화 역사에서 굉장히 유명한 장면이라고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 눈빛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겁니다. 저는 그 얼굴에서 묘하게 제 젊은 시절이 겹쳐 보였습니다. 말 못할 것들이 많았던 시절이요.

이 작품을 첫 번째로 추천하는 이유는, 누벨바그 중에서는 그나마 이야기 구조가 직관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입문자한테 진입 장벽이 낮은 편입니다.

📽️ 두 번째, 트뤼포의 『쥘 앤 짐』

이 영화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설명만 들으면 흔한 삼각관계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또 놓아주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비전통적인 관계 방식이랄까요. 그런데 그게 불편하게 그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고 가볍게 그려집니다. 근데 결말은 무겁습니다. 이 온도 차이가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트린 역의 잔 모로라는 배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데, 그 존재감 자체가 영화를 끌고 갑니다. 저는 이 영화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왜 멍한지도 잘 모르겠고.

📽️ 세 번째,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고다르는 트뤼포보다 훨씬 도전적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솔직히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장면이 뚝뚝 끊기고, 인물이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고, 시간이 어색하게 점프합니다. 이걸 ‘점프 컷’이라고 한다더군요. 편집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겁니다.

근데 이게 익숙해지면 묘하게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마치 재즈 음악 처음 들을 때처럼요. 처음엔 박자가 불규칙하게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그게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처럼요. 이 영화를 세 번째에 놓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앞의 두 작품을 먼저 보고 나서 누벨바그의 감각이 조금 쌓인 뒤에 봐야 맛이 납니다. 처음부터 이걸 보면 높은 확률로 중간에 끄게 될 겁니다. 저처럼요.

📽️ 네 번째,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이 작품은 누벨바그를 얘기할 때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는 것 같아서 특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녜스 바르다는 누벨바그 감독 중 유일한 여성이고, 그 시선이 남성 감독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영화는 한 여가수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파리를 걸어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심플한 설정이죠.

근데 이 영화, 퇴직하고 시간이 많아진 저 같은 사람한테 이상하게 잘 맞았습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냥 걷고, 보고, 생각하는 그 느낌. 직장 다닐 때는 절대 이해 못 했을 감각이 퇴직 후에는 바로 와닿더라고요. 영화를 보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작품이 분명히 있는데, 이게 그런 영화였습니다.


⚠️ 누벨바그 입문할 때 알아두면 좋은 점들

몇 가지 솔직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 자막 번역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벨바그 영화들은 대사에 문학적인 표현이나 당시 프랑스 특유의 말투가 많아서, 번역본마다 느낌이 꽤 다릅니다. 같은 영화를 다른 자막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영화 같기도 합니다.
  • 한 번에 몰아보는 건 비추천입니다. 저는 초반에 의욕이 넘쳐서 하루에 두 편씩 봤는데, 그러면 뭘 봤는지 다 섞입니다. 한 편 보고 이틀쯤 그 영화를 머릿속에 두는 게 훨씬 낫습니다.
  • 아무것도 검색하지 말고 먼저 보는 걸 추천합니다. 해석이나 리뷰를 미리 읽으면 영화를 볼 때 그 틀로만 보게 됩니다. 처음엔 어리둥절해도 그냥 끝까지 보는 게 나중에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 지루함을 견디는 것도 능력입니다. 이건 단점이기도 하고 사실이기도 합니다. 누벨바그는 현대 영화처럼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지루하다고 느끼는 그 시간도 사실 영화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이런 분들께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누구한테나 누벨바그가 맞는 건 아닙니다. 이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근데 이런 분들이라면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들어 영화를 봐도 별로 감동이 없어서 뭔가 다른 걸 찾고 있는 분
  • 바쁜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천천히 호흡하고 싶은 분
  • 이야기보다 사람 자체를 오래 바라보고 싶은 분
  • 저처럼 퇴직 후 시간이 생겼는데 뭘 봐야 할지 모르겠는 분
  • 예전에 한 번 시도했다가 포기한 분, 이번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분

반대로, 빠른 전개와 뚜렷한 결말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누벨바그는 처음 입문작으로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걸 억지로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자기 취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한 편 정도는 끝까지 봐보시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 마무리하며

퇴직하고 처음 누벨바그를 접했을 때, 솔직히 두 번이나 중간에 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이 쪽 영화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뭐가 달라진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빠르게 자극받는 것보다 오래 여운이 남는 걸 더 원하게 된 건지요.

누벨바그 영화들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냥 질문만 던지고 끝납니다. 젊을 때는 그게 불만스러웠을 텐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듭니다. 모든 걸 다 알고 싶어서 안달하는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까요. 그냥 조용히 앉아서 파리의 골목길을 걷는 흑백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오후가 됩니다.

처음엔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세 번째 시도에 겨우 빠져들었으니까요. 천천히, 한 편씩, 부담 없이 시작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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