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톰 행크스가 ‘평범한 남자’를 연기하는 방식이 특별한 이유
퇴직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30년을 출근과 퇴근 사이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손이 간 게 영화였습니다. 예전엔 주말에나 겨우 한 편 봤는데, 이제는 오전에 커피 한 잔 내려놓고 하루에 두 편씩 보는 날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톰 행크스가 나오는 영화는 볼 때마다 유독 마음에 남는 걸까, 하고요.
처음엔 그냥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근데 막상 그의 영화를 연달아 보다 보니까 뭔가 다른 게 있더라고요.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 그걸 한동안 설명을 못 했습니다. 친구들한테 얘기해도 “그야 유명한 배우잖아”라는 말만 돌아왔고요. 근데 저는 그 말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계속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 연달아 다시 보다 보니, 처음엔 몰랐던 게 보였습니다
퇴직 후 시간이 생기면서 예전에 그냥 흘려봤던 영화들을 다시 꺼내봤습니다.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터미널, 필라델피아, 그리고 최근 것들까지.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보니까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톰 행크스가 맡는 역할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지능이 낮은 청년, 무인도에 혼자 갇힌 평범한 직장인, 공항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이민자. 화려한 초능력도, 특별한 배경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이상하게 그 사람들이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처음엔 저도 그게 그냥 스토리가 좋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캐스트 어웨이를 처음 봤을 때 그냥 “무인도 생존 이야기구나” 정도로만 봤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뭔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배구공 윌슨에게 말을 거는 장면, 그 장면 하나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왜 그랬을까, 한참 생각했습니다.
💡 그 특별함의 정체, 직접 들여다보니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톰 행크스는 ‘평범함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배우들이 평범한 사람을 연기할 때 어딘가 티가 납니다.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새어 나옵니다. 감정이 필요한 장면에서 너무 크게 울거나, 너무 과하게 망설이거나. 관객이 “저 배우 지금 열심히 연기하고 있네”라고 느끼는 순간이 생깁니다. 근데 톰 행크스는 그 경계선을 거의 안 넘습니다.
30년 직장생활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봤습니다. 회의 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집에 가서 혼자 끙끙 앓는 사람,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멍하니 창밖 보는 사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하면서도 티 안 내려고 애쓰는 사람들. 톰 행크스가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게 딱 그겁니다. 화려하지 않은 진짜 사람의 반응이요.
터미널에서 공항에 갇힌 빅터 나보르스키가 처음 상황을 파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황하는데 너무 크게 당황하지 않습니다. 어이없는 상황인데 폭발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조금 멍하게 있다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움직입니다. 저는 그 장면 보면서 진짜 사람이 저렇게 반응하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갑자기 예상 못 한 일이 터졌을 때 저도 딱 저랬거든요. 크게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그냥 일단 뭐라도 해봐야지 하는 그 느낌이요.
👍 특히 좋았던 점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 번째는 눈빛 연기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톰 행크스는 대사 없이 눈빛 하나로 상황을 다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제니를 바라보는 장면들, 대사가 없어도 그 감정이 다 전해집니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순수하고, 순수하지만 그 안에 깊은 사랑이 있는 사람의 눈빛이요. 저는 그 장면들에서 연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냥 그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몸 전체로 연기한다는 점입니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오랫동안 혼자 지낸 사람이 사람들 사이로 다시 돌아왔을 때의 어색함, 그게 표정만이 아니라 어깨, 걸음걸이, 손 놓는 방식에서 다 느껴졌습니다. 이게 저한테는 되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오래 직장 다니다가 퇴직하면 비슷한 감각이 생깁니다. 30년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나서 처음 평일 낮에 마트 갔을 때, 저도 모르게 어색하게 서 있었거든요. 어디 있어야 할지 모르는 그 느낌. 그게 화면에서 딱 보였습니다.
세 번째는 유머와 슬픔을 동시에 다루는 방식입니다. 터미널에서 핫도그 먹는 장면처럼, 웃긴데 어딘가 짠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다른 배우들은 이런 장면에서 보통 하나를 선택합니다. 웃기거나, 슬프거나. 근데 톰 행크스는 둘을 동시에 가져갑니다. 이건 단순히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 솔직히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 다 좋았냐 하면, 사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보면서 좀 다르게 느낀 부분도 있었습니다.
톰 행크스가 잘 하는 역할의 유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 지치지만 버티는 사람, 결국 따뜻한 사람’.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난 역할은 제가 본 것 중엔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게 그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 배우가 진짜 나쁜 사람이나 복잡한 악역을 맡으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그 잔잔하고 절제된 연기가 오히려 어떤 영화에서는 영화 자체의 힘이 약할 때 도드라지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스토리가 강한 영화에서는 그 절제가 빛을 발하는데, 이야기 자체가 좀 약한 작품에서는 오히려 ‘밋밋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전부 그런 건 아닌데, 그의 후기 작품 중 몇 편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제 취향 문제일 수도 있지만요.
❓ 자주 받는 질문들, 저도 처음엔 궁금했던 것들
Q. 톰 행크스 영화 중 처음 보기에 뭐가 좋을까요?
저는 터미널을 추천합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워낙 유명하고 명작이지만, 처음 보는 분들한테는 감정의 파고가 좀 클 수 있습니다. 터미널은 가볍게 들어갔다가 나중에 묵직한 여운이 남는 구조라, 그의 연기 방식을 처음 느껴보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항이라는 공간 하나에서 이렇게 많은 걸 끌어낸다는 게, 보고 나서 한참 생각하게 됩니다.
Q. 오스카를 두 번이나 받은 게 정말 실력 때문인가요, 이미지 때문인가요?
저도 처음엔 ‘워낙 좋은 이미지라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살짝 의심했습니다. 근데 필라델피아를 다시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변호사 역할인데, 그 육체적 소진과 정신적 굴욕을 버텨내는 사람의 감정을 정말 세밀하게 연기합니다. 이건 이미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실력이 맞습니다.
Q. 나이 들수록 그의 영화가 더 좋아진다는 게 사실인가요?
제 경우엔 확실히 그렇습니다. 20대에 포레스트 검프 처음 봤을 때랑, 퇴직 후 다시 봤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인생에서 뭔가를 잃어보고, 기다려보고, 포기해보고 나서야 그 캐릭터들이 진짜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꼭 나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삶의 경험이 쌓이면 그의 연기가 다르게 읽힌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마무리하면서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게 사실 제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웅이나 악당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어느 정도 틀이 있습니다. 근데 그냥 보통 사람, 우리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을 화면에서 진짜처럼 만드는 건 훨씬 더 섬세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저는 30년 직장생활 하면서 영웅 같은 삶은 못 살았습니다. 그냥 매일 출근하고, 가끔 실수하고, 버티다가 퇴직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톰 행크스 영화를 볼 때 유독 마음이 움직이는 건, 아마 그 화면 속 사람들이 제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게 톰 행크스가 ‘평범한 남자’를 연기하는 방식이 특별한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에 그의 영화 한 편 꺼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분명히 예전에 봤던 것과 다르게 느껴지는 장면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